우리나라에 사도 도마가 와서 선교했나요?


1.무궁한 발전과 행복을 기원 드립니다.

2.서기 48년 7월 27일(음)은 인도 공주였던 허왕후가 사도 도마의 중매로 한국의 가락국 초대왕인 김수로왕에게 시집온 날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제1회 허왕후의 새미골로 행차 행사를 하동군수와 많은 내빈을 모신 가운데 MBC-TV의 의상 협찬으로 행사를 가진바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관광분야 1위 경상분지의 한 지역인 하동 새미골에서 허왕후의 날 기념모임을 다음과 같이 갖습니다.
1)일시: 2012. 9. 13(목) 오후2시
2)장소: 새미골(경남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사기마을)
3)행사내용
➀장금정 도예가 인사
➁허왕후 행차의 역사적 의미(조국현 박사)
➂스토리텔링 발표(장은자 박사)
➃허왕후 시대 떡차 재현(박봉화 교수, 정순임 약초채취 명장)

3.허왕후의 날 기념모임에 귀하와 귀 단체를 초청합니다.

붙임: 참고자료


역사발굴 관광자원화 연구소장(직인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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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당자: 신정순(010-2618-8887) 소장: 조국현(010-4391-4006)
시 행: 관광자원화팀78 (2012. 7. 22)
주 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588번지 산도빌딩 4F 도마 박물관 홍보관
대구광역시 동구 방촌동 강촌종합상가 4F 도마 박물관 자료실
경북 경산시 남천면 남천로 780-9 (영남외국어대학) 도마 박물관
전 화: (053)982-4006, 745-2226
E-mail: miso2200@daum.net / 공개
사도 도마 성지순례에 초청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관광분야 1위 김해여행)

1.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사도 도마가 1세기 한국에 와서 선교
 사도 도마(Thomas)가 한국에 직접 와서 선교한 것은 100%확실 합니다.
 도마 스토리텔링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읽으십시오.


2.사도 도마가 인도 공주였던 허왕후와 김수로왕을 중매(결혼)
 허왕후 스토리텔링, 알(수로왕)스토리텔링을 인터넷에서 검색


3.한국의 고분시대(서기 350~550년)에는 성만찬 예배
 성만찬 스토리텔링을 인터넷에서 검색


4.서기 648년 신라의 김춘추가 중국에서 신구약 성경을 받아옴.
 크리스천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
 김유신과 칼 스토리텔링을 인터넷에서 검색


5.성경 다음으로 꼭 읽어야 할 사도 도마 성지 순례자용 교재(책)를 구입
 1세기 가야는 기독교 국가였다.(조 국현 지음, 도마 박물관, 5000원)
 허왕후 스토리텔링(임 원주 지음 15000원, 책주문: 010-4223-1595)

6.안내지역 및 안내자
 김해: 국립김해박물관, 구지봉, 허왕후릉, 수로왕릉, 봉황동 유적지등
 경상분지: 대구(달성), 하동(새미골), 고령(알터), 부산(지질-오륙도),경산등
 안내자(가이드): 조 국현 053-982-4006, 010-4391-4006

7.기타
 자동차를 타고 김해의 사도 도마 성지순례를 할 수 있습니다.
 2000년 전의 음식을 재현한 천연음식을 예약하여 드실 수 있습니다.
(예약전화 010-2618-8887 담당자 신 정순)
 사도 도마 성지순례는 1988년부터 시작 되어 현재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관광분야 1위가 되었습니다.
 성지순례자의 준비물: 간편한 복장, 순례자용 교재 2권 등
인터넷 확인(http://cafe.daum.net/thomas7)
하동 새미골 스토리텔링
(1) 섬진강의 동쪽 땅이름 하동(河東)
나는 차입니다. 타고 다니는 자동차가 아니고 마시는 차입니다. 보리차, 둥굴레차와 같은 대용(代用)차가 아니고 녹차나무의 차입니다. 나의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세요. 말이라고 다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타는 동물의 말도 있고 곡식의 량을 측정하는 말도 있습니다. 한국말이 아닌 중국말에서의 차는 차나무과의 상록수인 차(茶)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가 처음 창조될 때는 두 가지 품종으로 태어났습니다. 인도 아쌈 지방의 대엽종과 중국의 소엽종입니다. 대엽종은 잎이 크고 카테킨 성분이 높습니다. 소엽종은 잎이 작고 아미노산 함량이 높습니다. 나는 먼 나라에서 시집왔습니다. 중국과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다문화 가정을 이루듯 나는 인도와 중국에서 한국으로 시집왔습니다. 대엽종 차는 서기 48년 인도에서 온 허왕후가 가락국 초대왕인 김수로왕에게 시집올 때 나를 가져 왔습니다. 그리고 소엽종차는 서기 828년 김대렴이 중국 당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올 때 가져 왔습니다. 나는 하동에 심어 졌습니다. 하동(河東)은 섬진강의 물(河) 동쪽(東)에 있는 땅 이름입니다.

나는 강가에 살아야 합니다. 따뜻한 강가에서 올라오는 아침의 습기와 많은 구름이 있어야 합니다. 하동은 한국에서 내가 살기 가장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가락국(駕洛國)의 동(東)쪽에 있는 낙동(洛東)강 옆에도 내가 살기 좋은 곳입니다. 강에서 물안개가 피어올라 구름이 되고 소나기가 한줄기 내릴 때는 어머니의 젖을 한껏 먹고 엄마 품에서 잠든 아기처럼 평안함을 나는 느낍니다.

(2) 하동군의 녹차와 새미골
나의 이름을 차로 부르는 사람들이여! 녹차만큼은 하나로 생각해 주세요. 차를 한 사람이라고 한다면 대엽종과 소엽종은 한사람의 몸에 붙어있는 오른발과 왼발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동에 대엽종이 먼저 들어오고 그다음 소엽종이 들어온 것은 한사람이 방에 들어올 때에 오른발이 먼저 들어왔나 왼발이 먼저 들어왔나 하는 것과 같습니다. 소엽종을 기르는 사람이 대엽종이 먼저 들어왔다고 경계한다면 한사람의 몸 안에서 오른발과 왼발이 다투는 것과 같습니다. 한 몸에 오른쪽 눈과 왼쪽 눈, 오른발과 왼발을 둔것은 합력하여 시너지 효과를 내라는 뜻입니다. 대엽종차와 소엽종차가 연합하면 더욱 다양한 맛과 향과 약효로 전 세계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내가 하동에 첫발을 디딘 곳은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새미골입니다. 허왕후는 김수로왕의 왕비가 되어서 가락국에서 살았습니다. 가야국은 연맹국가였지만 김수로왕이 다스렸습니다. 가야연맹은 낙동강과 섬진강 사이의 땅에 있는 부락이나 소국들로 이루어 졌습니다.

김수로왕과 허왕후는 김해를 서울로 삼고 왕궁을 지어 살았지만 휴전선 같은 섬진강 지역을 틈만 나면 순시 하였습니다. 김수로왕은 국방에 관심이 많았지만 허왕후의 관심은 국민의 건강에 있었습니다. 허왕후는 인도의 아유타국에서 배운 아유르베다 의학에 따라 약초로 각종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였는데 모든 약초 중에서 녹차를 가장 중심에 두었습니다. ‘약방에 감초’라는 말이 있듯이 ‘약초에 녹차’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나는 새미골 샘 곁에 처음 심어졌습니다. 새미골은 경상도 말로 샘을 새미라고 부르는 데서 생긴 말이며 지명이 되었습니다. 허왕후는 우물에서 떠먹는 샘이 있는데도 깊은 우물을 파도록 하였습니다. 지금도 새미골에는 바가지로 떠먹는 우물 옆에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깊은 우물이 있습니다.

(3) 새미골과 우물정(井)자의 비밀
하동의 새미골에 와서 대엽종 녹차인 나를 찾으시는 분은 나를 만나지 말고 돌아가세요. 나는 서울 광릉수목원의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 처럼 명맥을 이어가기도 힘겹습니다. 나는 근래에 심겨진 소엽종 차나무 군락지 안에서 잊혀진 듯이 사는 것이 편합니다.

내가 새미골에 처음 심겨진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허왕후는 나를 찻사발 만드는 곳 옆에 심었습니다. 녹차를 좋아하는 사람은 다기라고 하는 찻사발도 좋아합니다. 허왕후 시대는 토기 시대였습니다. 새미골 지역에는 토기를 만들기 좋은 흙이 있습니다. 회청색깔의 김해에서 나는 토기는 진흙에 철 성분을 넣어서 높은 온도에서 구워내었습니다. 토기인데도 철기제품이라 착각할 만큼 색과 형태가 철기를 닮았습니다.

허왕후는 자신이 원하던 붉은색 토기의 찻사발을 만들었습니다. 흙물을 비단 천에서 걸러내어 매우 정교한 다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김해에서 나는 철성분을 섞은 토기가 유약을 바른 것과 같은 효과를 내는 점에 착안하여 토기를 구울 때 철성분이 흘러나와서 유약을 바른 효과가 나는 고급 토기를 만드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고는 다기 작품에 샘을 나타내는 새미골을 한자로 우물정(井)자를 새겨 넣어 표시하였습니다. 허왕후가 만든 우물 정(井)자 새미골 다기가 국립 김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허왕후는 토기가 숨을 쉬기 때문에 차를 좀 더 오래두어도 변질되지 않는 점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좀 더 질 좋은 토기를 만들 흙을 얻기 위해서는 흰 연꽃이 피는 백련을 심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새미골에 백련을 심었습니다. 그리하여 새미골은 지금 백련리라는 지명이 되었습니다. 백련리의 새미골은 점차 명성을 얻어서 사기 마을이란 별명이 생기게 되고 진교까지 들어오는 뱃길 덕분에 수출을 하는 명성을 누렸습니다.

새미골 그릇은 일본에까지 이름이 높아졌는데 새미골 그릇의 인기 때문에 새미골은 화를 입었습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은 전쟁을 하면서 새미골 도공을 잡아갔습니다. 새미골 도공이 일본에 가서 만든 찻그릇이 최고의 작품 대접을 받았습니다. 새미골 도공이 만든 찻그릇을 일본 사람들은 이도(井戶정호)로 한국에서와 같이 우물정(井)자를 넣어 표현하였습니다. 이도(井戶) 그릇은 일본의 국보가 되었고 한국의 대통령이 일본에 가면 일본 수상이 이도(井戶) 찻사발로 차를 대접하곤 하였습니다.

현재 새미골은 장금정 선생이 복원하여 경남 문화재 2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장금정 선생은 ‘대장금’이라는 TV드라마 작품에 새미골 다기를 사용하도록 하여 일본에서 한류를 일으키는 일등공신 역할을 한 일류 도예가입니다. 허왕후는 나와 찻그릇을 같이 사랑하면서 나를 심고 토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우물을 팠지만 역사가 지나갈수록 사람들은 찻사발만 생각하고 나를 잊었습니다. 나는 산에 사는 잡목 취급을 당하였고 근대의 산림녹화 운동 때는 고급 나무를 심는다면서 차나무의 목을 쳤습니다.

그때 큰 나무인 나의 부모님이 몸통이 짤려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나는 어리고 키가 작아 화를 겨우 면하고 살아남았고 얼마 후 가져다 심은 소엽종 나무 사이에서 몰래 자라고 있습니다.

(4) 지리산의 약초와 화개장터
경상도와 전라도가 만나는 경남 하동군 화개장터에서는 내가 제일 인기입니다. 지리산에서 나는 각종 약초를 팔면서 하동군이 자랑하는 특산품으로 하동 녹차를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약초 따로 녹차 따로 팔기 때문에 판매가 시원치 않습니다. 하동녹차가 발전하려면 허왕후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 허왕후는 나를 녹차의 맛과 향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약초중의 으뜸으로 생각하였습니다. 약초중에 녹차가 꼭 있어야만 했기 때문에 녹차가 한국땅에 없는 것을 알고 서기48년 인도에서 시집오면서 녹차씨와 녹차 잎으로 만든 떡차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허왕후는 감기를 녹차로 처방하여 치료하였습니다. 감기를 한국말로 고뿔이라 하였는데 고뿔에 걸리면 고뿔차를 먹고 낫게 하였습니다. 허왕후가 가져온 인도의 아유르베다 의학에 의하면 어느 지역이든 그 지역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중요한 식물이 있는데 사람의 체질에 맞게 사용하면 거의 모든 병이 예방되며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허왕후는 약초를 넣는 토기를 만들었는데 토기의 항아리만 봐도 어느 약초를 넣었는지 알수있도록 가려내는 토씨문자를 토기에 새겨 넣도록 하였습니다. 가야시대의 가림토 문자는 허왕후가 시작하여서 히브리어를 닮은것이 더러 있는데 국립 김해 박물관에서 가림토 문자가 새겨진 토기 파편들을 볼 수 있습니다.

허왕후는 지리산 약초가 강과 바다를 가까이 두고 자라며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의 자연 조건 때문에 지리산의 약초가 가장 질이 좋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화개장터의 약초와 나를 아유르베다식의 체질에 따른 사용법으로 적용하면 녹차의 맛과 향에 치료효과까지 더해져서 화개장터의 약재는 각광받으며 세계 시장을 누빌 것입니다.

(5) 남해군의 도마리와 대국산성
경남 하동군 진교면 백련리 새미골에서 생산된 대엽종 녹차인 내가 경남 남해군 고현면 도마리와 대국산성에 갈 기회가 있었습니다. 김수로왕은 기마민족의 후손으로 말을 가져왔는데 가야의 최전방 지역이라 할 수 있는 남해라는 섬에서 말들을 길렀습니다. 지금 제주도에서 말을 기르듯 섬의 크기가 말기르기에 적당한 남해에서 기르며 특히 말기르는 핵심지역을 도마리(都馬里)라 하였습니다. 말의 수도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사도 도마가 도마리 부근의 산위에 대국산성(大局山城)을 쌓는 일에 석수의 기술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도마리는 사람 이름이자 말의 수도라는 두 가지 뜻을 함께 지닌 이름입니다. 대국산성을 쌓는 일에 많은 사람이 일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허왕후 차’라고 이름 불리며 갔는데 차를 나르는 수레가 동원 되었습니다. 한번에 30ℓ를 나르는 철제품 통이 있는데 바퀴가 두 개 달려 있습니다. 이 모양을 본뜬 토기가 조그맣게 만들어져서 전해 내려오는 것이 가야시대의 차륜토기입니다.

대국산성은 전라남도 여수 앞바다를 내려다 볼 수 있어서 백제 군사의 배를 감시하고 또한 경남 사천쪽에서 전하는 봉화를 볼 수 있는 곳에 세워진 산성입니다. 사도 도마는 이스라엘에서 석공의 일을 배웠는데 당시 이스라엘 석공은 세계 최 일류의 석공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기 70년 이스라엘 나라는 로마의 티투스의 군대에 패하여 예루살렘의 석공이 이탈리아로 잡혀가서 만든 건축물이 이탈리아 로마의 콜로세움입니다. 사도 도마는 인도를 거쳐 한국에 왔는데 인도에서는 군다포로스왕의 왕궁을 지었습니다.

대국산성은 기초만 쌓고 끝난 미완성의 작품입니다. 둘레가 1.5㎞이며 높이는 5~6m 폭이 2~3m인데 성안에서는 토기조각이 발견되어 삼국시대에 쌓은 성이란 것이 증명되었습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삼국시대 가운데 가야국에 있었던 가야성이라 해야 합니다. 사도 도마가 지도하여 쌓은 성이 경북 청도군 화양읍의 읍성과 경남 김해시의 분산성이 있지만 대국산성은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점에서 연구 가치가 높습니다.

(6) 남해군 상주해수욕장과 김해 가는 길
김수로왕과 허왕후가 남해라는 섬에서 왕궁이 있는 김해로 돌아가려 할 때 김수로왕은 말을 타고 육로로 가자고 하였습니다. 김수로왕은 기마민족의 후손으로 말을 타면 편안하였으나 배를 타면 어딘지 불안 하였습니다. 반면 인도에서 배를 타고 가락국에 시집온 허왕후는 배를 타고 가는 것이 편안하고 향수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김수로왕은 자식의 성씨를 허왕후 성씨를 따르도록 배려할 만큼 허왕후 의견을 존중하였기 때문에 허왕후가 좋아하는 뱃길을 따라서 김해에 가기로 하였습니다.

당시는 천연 방파제가 있는 곳이라야만 항구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남해군의 상주 해수욕장으로 갔습니다. 상주 해수욕장은 자연 바위가 방파제 역할을 해주며 바닷가의 모래는 곱디고운 은모래입니다. 허왕후는 상주 해수욕장에 도착하여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며 고향 생각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고운 은모래 위에 찻잔을 펴 놓고 허왕후 차(茶)를 대접하였습니다. 허왕후가 궁궐에 있을 때는 궁중예법으로 차를 접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야외에서는 서민이 친근하도록 서민 차(茶)를 끓여 접대하였습니다. 허왕후는 나를 자신의 몸종처럼 데리고 다녔습니다.

(7) 하동의 차 시배지와 테마여행
서기 828년 드디어 나의 짝이 하동에 왔습니다. 김대렴 공(公)이 중국의 당나라에 갔다가 소엽종 차(茶)씨를 가져와서 차를 심은 곳이 하동군 화개장터 뒤편에 있는 차 시배지입니다. 소엽종 차나무가 있고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서기 828년은 장보고가 청해진을 설치한 해로 해상교역 활동이 있었지만 나의 짝을 데려오는 일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소엽종 차를 어느 곳에 심어야 하느냐 하는 문제로 통일신라의 사람들은 관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나라의 최고 적합한 장소로 하동이 뽑혔을 것입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차와 찻그릇의 테마 여행지로는 하동군이 제일 좋습니다. 나를 따라 하동에 오시면 차밭과 차로 만든 음식을 맛볼 수 있습니다. 하동에는 군수님과 온 군민이 나를 ‘왕의 녹차’라고 치켜세우며 소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차와 관련된 다양한 문화가 펼쳐져 있습니다. 한국의 전통차 다례(茶禮)를 하동에서 만나 보십시오. 그리고 하동에서 나를 만나다 보면 일본의 고급문화인 다도(茶道)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일본에는 1570년 나가사끼에 기독교가 들어와서 1580년에는 선교사가 도시행정을 맡았을 정도로 기독교가 번성하였습니다. 그러나 도요토미히데요시는 기독교 금지령을 내리고 고문과 학살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일본의 기독교인들은 성찬식을 할 수가 없어서 다도를 시작하였습니다.

일본의 다도는 예수님의 살을 상징하는 떡을 먼저주고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포도주 대신 차를 마셨습니다. 기독교의 박해속에서도 성찬식을 한 것이기 때문에 성찬식의 형식이나 내용이 왜곡되었다고 비판하기보다는 내가 그런 박해시대에 살았다면 그 정도라도 신앙을 유지 할 수 있었겠나를 생각하면서 다도를 이해하는 쪽이 옳다고 봅니다.

나는 일본에서 다도(茶道)라는 종교성을 가진 문화가 되었고 나를 따라 검도, 유도라며 도(道)자를 가진 문화가 나왔습니다. 나는 한국과 일본에서 차(茶)라는 이름으로 뿌리를 내리며 성공하였습니다. 허왕후에게 몸종처럼 받들었던 나는 차의 테마 여행을 오시는 귀하를 섬길 자세로 하동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서 오세요.


글쓴이: 스토리텔링 작가 장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