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김씨 사군파의 역사와 인물.wav
유구한 역사와 충효(忠孝)의 정신을 이어온 명문가
김해김씨(金海金氏)는 가락국(駕洛國)의 시조(始祖)인 수로왕(首露王)을 비조(鼻祖)로, 13세 김유신(金庾信) 장군을 중조로, 51세 김익경(金益卿)을 파조(派祖)로 하는 한국 최고(最古)의 성씨 중 하나입니다. 오랜 역사만큼이나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며 명문가의 위상을 지켜왔으며, 그중에서도 **사군파(四君派)**는 충효와 무(武)를 겸비한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하며 가문의 명예를 드높인 대표적인 분파입니다.
사군파는 고려 시대에 감무(監務) 벼슬을 지낸 **김익경(金益卿)**을 파조(派祖)로 합니다. '사군파'라는 이름은 김익경의 후손 중에서 4대에 걸쳐 나라에 큰 공을 세워 '군(君)'에 봉해진 네 명의 인물이 나왔기 때문에 붙여졌습니다. 이는 가문의 큰 자랑이자 영광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학천군(鶴川君) 김극조(金克祧)
학성군(鶴城君) 김완(金完)
해성군(海城君) 김여수(金汝水)
학림군(鶴林君) 김세기(金世器)
이처럼 한 가문에서 4대에 걸쳐 '군'의 작위를 받은 것은 조선시대에 매우 이례적인 일로, 사군파가 국가에 기여한 공로가 얼마나 지대했는지를 짐작하게 합니다.
사군파는 절의를 지킨 충신과 전장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무장을 다수 배출하였습니다.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충신이었던 **김진문(金振門)**은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두문동(杜門洞)에 은거하며 고려 왕조에 대한 충절을 지켰습니다. 그의 곧은 절개는 후손들에게 큰 귀감이 되었습니다.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등 국가적 위기 속에서는 학성군 김완(金完) 장군이 뛰어난 무공을 세워 나라를 구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의 용맹함과 충성심은 사군파의 기상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이처럼 김해김씨 사군파는 가락국의 왕손이라는 자부심과 함께,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충(忠)과 효(孝)를 가문의 큰 덕목으로 삼아 국가가 어려울 때마다 헌신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에도 그 후손들은 선조들의 빛나는 정신을 이어받아 사회 각계각층에서 명문가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